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 그의 글쓰기를 평하다. ㆍ오늘...& 한 줄의 생각

이 책이 처음 세상에 나온 년도를 생각하면 너무 늦었지만, 현재까지 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에 가장 많은 판매 부수를 기록했을 '상실의 시대(원제:노르웨이의 숲)'를 읽었다.

원제를 '상실의 시대'로 작가 스스로 바꾸어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워낙 '상실'을 좋아하는 그를 생각하면 잘된 개명이라 생각한다.

'양을 쫓는 모험'과 '상실의 시대' 사이에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같은 장편 소설이 몇 권 더 존재하겠지만, 가지고 있는 책 중에서는 그 다음 순서였다.

그의 책들을 발간 순서대로-물론 가지고 있는 책에 한해서- 섭렵해 가는 동안 그의 글쓰기 기법은 '레고 블럭'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그마한 블럭들의 역할을 할 단편이나 전작의 소설들 중에서 아이템을 모은 후, 새로운 디자인과 직조를 통해 또다른 직물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어린 아이들이 같은 블럭 조각을 가지고도 한 번은 자동차 바퀴로 또 한 번은 비행기 날개로 만드는 것과 같다.

그러다 보니 엇비슷한 캐릭터의 인물과 소재,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이제는 읽었던 책들의 분별마저 모호해지는 또 다른 '혼돈'이 있다. 이 역시 작가의 노림수인가?

대부분의 작가들도 '습작'이라는 이름으로 밑 작업을 진행하겠지만 하루키의 경우 정규 발간 작품을 다음 작품을 위한 습작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를 노골적으로 즐기는 편이라 하겠다. 실제 단편 '개똥벌레'의 경우 그 전체가 '상실의 시대'에 하나의 章으로 온전히 들어가 있다.

특이한 소재와 발상으로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구석은 여전하지만, '상실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현실성있는 스토리의 소설이 된다. 이전 소설들이 그랬던 것과는 달리 '나'와 친구 '쥐'라는 호칭에서 '와타나베'와 '기즈키'라는 제대로 된 이름이 처음 등장한 소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과 마찬가지로 주인공 와타나베와 연결된 '과거'의 두 사람은 모두 '상실'되어 진다. 유난히 책 마다 자살이 등장하는 하루키의 이야기는 이번에도 친구 '기즈키'와 그의 애인이자 와타나베가 사랑했던 '나오코'를 차례로 자살의 방식으로 상실시킨다.

반면 현재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 여자 친구 '미도리'와 중년의 여성 '레이코'와는 과거의 사람들과는 달리 정돈되지 못한 관계지만 보다 끈끈하고 현실적인 사랑을 나눈다.  어쩌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 보고 있는 동전의 양 면처럼 '나오코'와 '미도리'가 대칭의 궤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야기의 큰 골격은 현재와 과거, 현실과 로망 사이에서 '혼돈'의 아슬한 외줄을 타는 청년기의 방황을 그린 이야기로 보이지만 정작 작가는 그 방황이 일회성인 것이 아니라 일생을 두고 재현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오랜 세월 후. 독일 공항에서 들려 온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이 와타나베에게 다시금 방황과 혼돈을 가져오는 '상실의 트리거'가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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