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고 ㆍ오늘...& 한 줄의 생각

늘 당한다 생각하면서도 하루키, 그의 책을 또 읽었다. 


언제가부터 사서 읽기 보단 대여하는 쪽을 택해서 손해감이 아주 큰 것은 아니지만 600페이지 짜리 두 권의 장편을 읽어 내려가는데 들어간 시간과 노력을 생각해보면 늘 나중에 손익을 생각하게 만드는 그이다.



왜 그럴까?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읽는 내내 흥미를 잃은 적도 없다. 짧막하고 단정한 그의 문체와 매력적인 묘사력과 수시로 오감을 집중하게 만드는 에로틱한 상황들을 감안하면 적잖은 글솜씨에 감탄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매번 노벨 문학상에 후보로 거론될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그 이유. 그 스스로는 부인할지 모르겠으나 이젠 정말 '상업성'이 느껴진다. 때가 되었으니 책을 내는 것 같은 느낌이 크다.


그의 글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평범하다못해 평범한 주인공. 그를 둘러싼 사사로운 갈등의 등장. 이 때부터 나타나는 개연성없는 등장인물의 나열. (심지어 이번엔 이데아니 메타포니하는 이름이 달린 가상의 인물들까지 가세한다) 그들을 이어주는 역시 맥락없이 엮이는 사건들과 상황 전개. 독자들은 이쯤에서 뭔가 지독히 계획된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게 된다. 난 데 없는 사람들이 난 데 없이 여기 저기 엮여 있으니 이 얼마나 긴장하기 좋은 구조인가! 


하지만 이 쯤되면 하루키의 글이 슬슬 산으로 가기 시작한다. 난징 대학살 같은 의식 있어 보이는 주제를 함유하긴 했으나 이 역시도 본래 글의 흐름과는 가히 개연성이 있다 보기 어렵고 늘 그렇듯 이게 꿈인지 환상인지 모를 세상으로 주인공을 연결해 모든 얽힌 실타래를 푸는 숙제를 결국엔 독자에게 던져 버리고 입을 닦아 버린다. 숙제를 풀어야 할 상대는 때로는 말하는 양이 되기도 하고 이번처럼 그림 속에서 튀어 나온 기사단장일 때도 있다. 


한마디로 기이한 환상의 어른 동화처럼 보이나 해석이 불가능할 정도로 맥락이 없어 읽고 나서도 이게 뭐야?하는 찜찜함이 남게된다. 열린 결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해석을 달리할 수 있다는 말과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전혀 다른 의미이니.


얼굴없는 남자는 도대체 무엇이며?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가 주는 의미는 무엇이며? 주인공이 여자아이 마리에를 구하겠다고 어둠의 구멍 속을 사나흘 헤매고 다니는 동안 여자아이는 친아버지일지 모르는 남자 멘시키 집의 벽장에 그리고 방에 숨어 초콜릿이나 까먹다가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조용히 귀가한 것 밖에 없다. 둘 간의 연관 역시 무엇이 있단 말인지? 이혼에 집착하던 주인공의 아내 유즈는 왜 이혼서류를 받고서도 처리하지 않았으며 재결합에 선선히 응했을까?


따라서 하루키 그의 책의 분량은 등장인물의 숫자에 달려있다. 그냥 주인공과 일정 부분 연관을 긋다가 알고보면 다른 등장인물과도 이런 사이였다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그러다 적당한 시점에서 꿈인지 환상인지를 불러와 그런 불편한 관계를 잊을만큼 적당히 무마시키면 된다. 


늘 당한다 생각하면서도 읽게되는 그의 글들. 분명 아침 드라마의 그것과 같은 중독이 있다. 시청료를 안 내고 보는 정도로는 불평할 수 없게 만드는 딱 그정도. 전체적인 스토리는 상관없이 매 회 비치는 상황들에 매료되는, 


나에게 그는 성공한 상업작가이다.

상업적 초상화에 염증을 내고 떠났다 결국엔 다시 상업적 초상화가로 돌아온 주인공 '나'가 하루키의 이데아이자 메타포인 것을 눈치채고 말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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